2017년 9월 26일의 기록

디지털 성폭력 운동을 하며.

“모두 챙기고 나온 게 맞아?”
사무실에서 밖으로 향하는
길에 썬 언니는 나에게 확인차 물어본다. 나는 손가락을 꼽아 고민했다. 자료집은 국회로 바로 배달해달라고 요청했고,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석 확인 메시지를 돌렸다. 다과는 국회에서 준비하기로 했고, 발제자로 서기로 한 썬 언니는 밤새 발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우리가 골머리를 앓았던
발제 자료를 USB에 옮겨 담아서 지금 내 주머니에 들어 있다. “아마도 맞는 거 같아.” 사실 이 말을 하는 내 목소리에 그리 자신감이 담기지는 않았다. 항상 무언가를 빼먹는 나쁜 버릇 때문에
이번에도 혹시 무언가를 빼먹었을까봐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신분증은 챙겼지?”
언니가 한번 더 물어봤다.
“응, 챙겼어.”

오늘은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 토론회’가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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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는 여성에게도 친절했는가.”

디지털 문명에 사람들은 모두 신 자유 시대가 왔다고 찬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은 여자애들에게 ‘보지’를 아냐며 낄낄거렸다. 아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알았을지는 알고 있었다. 

21세기는 디지털의 발달로 정보화 시대에 이르렀다. ‘디지털 digtal’이란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낱말인 ‘digit’에서 기원된 말이다. 원래 숫자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으나. 현재에는 특정한 단위(파장)를 가진 이산적(연속적) 수치를 처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디지털이란, on(0)과 off(1)로 이루어진 (이산적) 연속적인 전자적 신호뿐만 아니라 이를 2진법 숫자로 처리하고 출력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과정을 통해 컴퓨터 또는 핸드폰의 화면에는 디지털 데이터인 ‘이미지와 영상 텍스트’등이 출력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러한 신호 값을 송수신하고 변환하는 기기를 디지털 기기라고 칭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전화기, 티브이 같은 기기들이 모두 디지털 기기이며, 디지털을 통해 그러한 데이터를 송수신한다. 디지털은 곧 정보의 형태와 전달 방식 그 자체를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디지털’의 발명은 사회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우선 현대 광랜을(빛을 이용한 정보통신망 선) 통해 빛의 속도로 이동되는 디지털 정보는 전 세계의 각국의 거리를 좁혀놓았다. 우리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소식을 알아내려고 했다면, 아마 최소한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오늘 날짜의 신문과 현재의 날씨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세계를 접해온 아이들은 공간과 시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광활한 디지털 정보의 공간 ‘사이버스페이스’의 주민으로서 자라오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또한 그들은 인터넷 속에서 주도적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주체적인 발화자의 역할에 익숙해진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 키 Marc Prensky는 이러한 디지털 패러다임 속에서 생장한 사람은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의미로 디지털 네이티브라 명명하였으며. 성인이 되어 디지털 패러다임에 편승하게 된 세대는 이전 세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여 디지털 이주민이라 명명하여 그 차이를 두었다. 

1997년도는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해였다. 어쩌면 디지털 세대의 서막을 알리는 해였을 수도 있지만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사회에 떠들썩해지기 시작한 때이다.  1997년 청소년들이 찍은 촬영물이 사회에 알려지며 큰 물의가 빚어졌다. 1997년 07월 23일의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김홍수 기자) 2학년의 남고등학생은 집에 캠코더를 설치하고 기다린 뒤 중학생(여) 1년생에게 “바로 지우겠다”는 말로 거듭 졸라 촬영에 이르게 하였다. 하지만 남고등학생은 지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영상을 세운상가에 불법적으로 판매되었다. 이 사건 속에 중학생은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에 등장되었던 사실을 ‘문란한 일탈로’ 바라본 검경에 의하여 ‘음란물 제작 죄’ 가해 학생과 함께 처벌했다. 이후 주변인의 증언에 의해 그녀는 남자 선배에게 성폭력 또는 구타를 당한 정황이 있음이 알려졌으며. 성폭력 사실도 알려졌지만. 그 이후로도 언론은 집요하게 피해 학생의 행적을 쫓으며 그녀의 대한 사회적 가해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사회가 떠들썩했던 그때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어렴풋 생각나는 나의 기억의 시작은 컴퓨터와 함께한다. 지금처럼 얇은 화면의 컴퓨터는 아니다. 지금은 유물처럼 기억되는 뚱뚱한 모니터에 하늘색 배경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98 SE. 2018년 6월 18일을 기준으로 20주년을 맞이했다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 프로그램은. 인터넷 개막했다는 2000년도에 가정용 컴퓨터를 책임지던 안방 (OS) 운영체체였다. 

7살이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컴퓨터는 요술 박스였다. 우리 집에서 컴퓨터는 항상 부모님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오빠의 차지었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들여놓고 ‘공부용으로 써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지만. 오빠는 항상 부모님 몰래 컴퓨터로 게임을 했고. 오락실 게임이나 CD게임을 다운로드하여 플레이하던 그는 2인용 게임을 할 때마다 나를 옆에 앉혔다. 주로 ‘킹 오브 파이터즈’나 ‘드래곤볼’ 같은 격투 게임, 혹은 포켓몬스터 같은 게임이었다. 나는 오빠가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신기해 따라 해 보겠다고 컴퓨터에 접속해 이것저것 눌러보다 그만 바이러스에 걸려 크게 혼이 났다. 아마 된통 혼이 난 이후로는 한동안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것 같다. 

 2000년 8월 배포된 교육부의 제7차 교육과정인 초. 중등 정보통신기술 활용 교육 운영지침이 초등 교육에 반영되며. 학교 안에서는 컴퓨터 교육을 진행했다. 부모님은 그런 교육 변화에 따라 나를 컴퓨터 교실로 보냈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한글’ 프로그램에 대한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향은 학교 수업에도 그대로 나타났는데, 학교에서 요구하는 숙제 또한 직접 노트나 종이에 작성해 제출하는 게 아닌 ‘한글’ 작업을 통해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유년기부터 오빠와 어울려 놀던 어린 기억 때문인지 또래 여자 아이보다는 남자아이와 친했던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내 게임에 푹 빠져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PC방을 다니며 또래 아이들과 게임 대결을 하기도 했다. 싸이월드가 나오기 까지, 버디버디 또한 나의 생활의 일부였다. 

 부모님은 오빠와 함께 컴퓨터 게임에 빠진 나를 보며 ‘여자’ 아이가 왜 이리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혼을 내셨다. 특히나 격투를 하고, 싸우는 시스템을 가진 컴퓨터 게임은 ‘여자아이들’이 아닌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로봇을 가지고 놀던 남자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여자인 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일은 부자연스럽게 비친 모양이었다. 실제로 또래의 동성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컴퓨터 관련의 이야기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는 조금은 특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왜 ‘보지’‘야동’이라는 말을 지껄이며 낄낄거리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당시 2006년도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소위 야동이라고 불리는 ‘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마냥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버디버디에서도 천체 쪽지로 그런 사이트들이 공유됬다. 아동 성착취 영상을 올려놓은 홈페이지도 있었다. 또한 게임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프루나’와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면 ‘국산’이라고 불리는 유출 영상들과, 연예인 유출 영상이 존재했고.  나는 나의 오빠가 그러한 영상을 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빠가 직접 ‘내가 이런 영상을 본다!’ 고 하진 않았더라도 같이 컴퓨터를 공유하고 게임을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보였다. 사실은 나는 당시 그 영상을 본 적도 있었다. 호기심에 열어본 파일 속에는 여성과 남성이 몸을 섞고 있었다. 영상에 제목에는 이따금‘걸레’라는 말이 함께했다. 

 여성을 비난할 때 ‘걸레’라는 말을 쓰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나 뉴스 기사에서 여성 연예인들을 비하할 때 그들은 ‘걸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이들은 그것을 빠르게 흡수했고. 여자아이들에게 장난 삼아 ‘너 걸레니?’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것이 경멸의 의미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의미를 모르고 툭툭 내뱉는 아이도 있었다. 나도 뜻과 의미를 모르고 걸레라는 말을 부정과 경멸의 의미로 사용하다가. ‘걸레’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했다. ‘걸레’는 아무에게나 몸을 내어주는 사람, 아니 여자였다. 여자 애들은 ‘걸레’의 의미를 알고 난 후로부터 ‘걸레’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했다. ‘걸레’라는 낙인이 찍히면 자연스럽게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은 녹록지 않다. 여학생들이 많이 이용했던 버디버디뿐만 아니라 크레이지 아케이드 알투비트와 같은 게임에는 성적 호기심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노리기 위한 채팅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변태녀 구해요’ ‘변태초딩녀구해요’ ‘야한거 궁금한 여자 구해요’ ‘여자 친구 구해요’ 모든 이들이 그냥 지나치진 않았을 것이다. 그중 여자 친구를 구한다는 게시글에 호기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본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나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이제부터 연애를 하자고 말했다. 연애에 대하여 잘 모르던 나는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 달라며 요청했다. 어릴 때부터 오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비틀어진 성착취 산업’을 알게 된 나는 나의 신체 사진이 어떻게 쓰일 것이라고 그때부터 어렴풋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강력하게 거부했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아이들도 그렇게 거부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면 또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접근해 몸 사진이나 웹캠을 통한 ‘영상 통화’를 요구하곤 했다. 한 번은 ‘언니’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나에게 서로 몸 사진을 교환하자고 요청했다. 나는 모니터 너머의 그 사람이 진짜 ‘언니’인지 혹은 중년의 남성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단지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그 말에 사진을 ‘교환’하자는 말에 진심으로 혹했을 때가 있었다. 신체의 변화가 일어났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의 신체의 변화를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진을 교환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연예계에서 웹캠 유출 사건이 터지고 사람들은 그녀를 맹렬히 비난했다. 나는 그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사람들은 욕설을 하면서도 너도나도 그 영상을 다운로드하여보고자 했다. 아마 내가 그때 인터넷의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나도 그녀와 같이 걸레 낙인을 두려워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건을 보면서 내가 ‘야동’이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두려워해야만 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무렵 알게 된 사이트가 소라넷이었다. ‘대략 10년 전 2009년 무렵의 나는 지나가는 말로 ‘소라넷’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 사이트에는 변태적인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그 사이트를 접속해보았다. 그때가 처음 소라넷이라는 사이트를 접한 때였다, 그때의 소라넷도 폐쇄되기 직전의 소라넷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6년 후의 내가 소라넷 폐쇄 운동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나에게 소라넷을 포함한 ’ 야동‘이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말만 하지 않을 따름이지 거의 ’ 야동‘을 본 적이 있었다. 남자애들은 낄낄거리며 야동의 관련된 이야기를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들도 너 혹시 ’ 야동‘ 본 적 있니? 친한 친구 사이끼리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 야동‘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미성년자가 감히 누려선 안 되는 어른들의 문화였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그저 ’ 어른들‘은 저런 것을 보는 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남학생 여학생이 때로 몰려 학급 컴퓨터로 ’ 야동‘을 틀어놓기도 했다. 

2010년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의 물결과 함께 아이들은 ’ 야동 사이트‘의 이름만 알면 손쉽게 영상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집에 모여 놀다가 한 번은 같이 문제의 사이트에 접속해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은 여자아이들은 소위 ’ 야동‘이라고 불리는 남자아이들의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함께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나는 일본 영상은 좀 과장된 거 같고, 서양 영상은 좀 역겨워 역시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한국 영상이 자연스럽고 볼만한 거 같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한국은 포르노가 불법이라며 투덜거리던 아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야동’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말보다는 어른이 되어서 보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포르노가 1990년도 극장에서 상영되던 애로 영화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학생들이 ’ 야동‘을 접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그때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 교내 집단 강간 사건‘들이 그것에 일조했는 언론의 말에.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야동) 포르노에 중독되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어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어른이 돼서 보거라” 아이들을 어르는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은 “우리도 현실과 야동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어요!”라고 뾰족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이들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지는 못해도, 현실과 포르노를 구분할 줄 모를 정도로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 성욕에 약한‘(성교육 교과서에 따르면) 남자아이들이 그런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의 대한 생각이 무너진 것은, 2015년도였다. 처음엔 ’ 술 취한 여성‘을 강간한 뒤 실제로 후기를 올린다는 소문에 이를 조사하기 위해 소라넷에 들어갔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술 취한 여성을 상품처럼 내걸었으며. 그들끼리의 범죄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이를 부득부득 갈던 나는 문득 ’ 00 대학교 00녀‘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흐릿한 화질 숨겨진 듯한 카메라. 

 사람들은 댓글로 ’저 여성의 인생이 끝났다며 낄낄거렸다 ‘

 나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여태까지 지나쳐 왔던 영상들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아니 사실 나는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무의식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지? 왜 문제라는 것 알아챈 그때도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도 알지 못한 채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에겐 언어가 없었다. 그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참혹하게 유린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 야동‘이라고, 아니면 ’차마 ‘야동’이라고 부르지 못해 ‘그것’이라고 말해왔던 것이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심신 미약의 여성을 강간하는 영상물은 ‘골뱅이’언제나 뉴스 옆에 붙어있었던 ‘최음제 흥분제’ 광고는 여자를 확실하게 ‘골뱅이’로 만들 수 있는 데이트 강간 약물이었던 것이다.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이상했다.

 현실과 포르노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아이들뿐이었을까? 우리는 모두 ‘폭력’을 포르노라고 말하며 살아왔는데?

 과거의 나의 대한 혐오와 함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가 거짓된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내가 ‘야동’이 되는 것을 두려워만 했지 그것을 보며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했을까. 왜 사람들은 ‘폭력’을 저지르며 아무도 그것이 ‘폭력’ 임을 알지 못하는 걸까. 왜 영상 속에 그녀는 비난받아야 하는 걸까. 세상이 180도 반전된 것 같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빨간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2015년도 ‘게임 개발자’의 꿈을 안고 있던 나는 그때부터 2018년도 현재까지 디지털 성폭력 운동을 하게 되었다. 내가 디지털 성폭력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유였다. 

누군가 영상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구나.’가 아닌 정당한 분노를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지금 ‘디지털 성폭력’에 분노해 거리에 나온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의 역사와 함께했다. 혹자는 2000년도 유출된 연예인 유출 비디오들이 ‘한국 네트워크 강국’을 이끌어낸 주역이라고 말한다. 당시 유출 영상을 보기 위해 대학생들이 너도 나도 네트워크 공부를 했더랬다. 그렇다면 중세시대 ‘마녀사냥’에 희생된 그녀들은 ‘근대화’의 주역인가? 그녀들의 죽음이 흑사병과 같은 재앙, 사회적 경제적 불만을 잠식시켰으므로? 나는 지금까지 이뤄졌던 디지털 성폭력을 단순한 ‘사생활 침해’의 범주에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디지털 시대’의 마녀사냥을 겪고 있다. 

 서울대 서양학 교수에 빠르면, 유럽의 마녀사냥이 가장 절정에 달한 것은 다름 아닌 ‘인쇄술’이 생겨난 근데 초였다고 말한다. 1350년 이전에 사악한 행위로 재판을 받은 당사자의 70퍼센트가 남성이었다면, 여성은 30퍼센트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14세기 후반에 남녀 비율이 역전되어 16~17세기에 이르러 여성이 80%를 넘게 차지했다. 그리고 16세기 마녀사냥은 절정에 달했다. 

 이는 ‘마녀의 관련된 종교적 서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급된다. “여성이 혼자 생각할 때에는 사악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귀는 대게 타락한 신앙인이나 신심이 약한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 때문에 마귀는 여성을 더 선호하며 찾아다닌다.” 이러한 ‘여성 혐오’가 담긴 서적은 수천 부가 인쇄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마녀사냥의 법규에 따라 대게 ‘보호할 남성’이 없는 ‘미혼 여성’과 ‘과부, 힘없는 노인’ 등이 수없이 많이 처형되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캘리번과 마녀” 에서는 이러한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서술한다. 마녀사냥은 여성들이 출산을 통제하는 데에 써왔던 모든 방법(피임)을 악마적 방법이라고 몰아붙였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통제를 제도화했다. 그리고 여성의 신체를 사적 영역의 대한 노동으로 밀어 넣은 뒤 여성의 노동을 무급화 시켰다. 

“산파나 모성을 거부한 여성, 혹은 이웃집에서 땔감이나 버터를 훔쳐서 생계를 이어가던 거지들만 마녀에 속했던 것이 아니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문란한 여성들(창녀나 간통한 여성,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결혼과 출산의 구속 밖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행사한 여성들) 또한 마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녀재판에서 “평판이 나쁜” 것은 유죄의 증가였다. 말대답을 하거나, 논쟁을 하고 욕을 하거나, 고문을 받으면서도 울부짖지 않는 방한적인 여성들도 마녀에 속했다. 여기서 “반항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여성들이 연루된 특정한 전복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캘리번의 마녀 중에서 

2000년도부터 ‘디지털’ 매체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던 디지털 성폭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아야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결혼과 출산에서 자신의 색슈얼 리티”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러한 이유 단 하나만으로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걸레’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받는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법부’와 ‘언론’또한 가해자의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그녀들을 가해했다. 영상에 등장한 그녀가 ‘성적으로 주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그녀들을 지탄하는 폭력의 수위는 높았다. 사람들은 그녀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영상 촬영의 대한 피해자의 흉흉한 소문은 심심치 않게 돌았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디지털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즉 ‘걸레’가 되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발버둥을 쳐야 했다. 즉 ‘성적으로 무지’ 하며 ‘수동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이 데이트 성폭력에서 ‘협박’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 또한 눈여겨봐야 하는 현상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으로서 배운 가부장적인 폭력을 이용해 여성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자 하는 행위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디지털 폭력에 있어 지목되는 ‘개똥녀’ ‘루저녀’ ‘패륜녀’와 같은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욕설과 막말’을 했던 이유로 무자비한 신상털이와 공개적 테러 및 괴롭힘 등을 당했다 2010년 해당 사건을 풀이한 기사에의 인용에서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낸 판옵티콘” “자신의 행동이 언제든 비추어지는 유리의 성” 등으로 비유한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이 사냥하는 것이 항상 “여성”이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여성에게만 향하는 것에 의문을 가한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것이‘여성 혐오’라 알지 못했다. 

 여초 사이트 대한 ‘도덕적 억압’ 또한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일반적인 커뮤니티에서 ‘몰카’ 라던지 성폭력에 대한 조장 글이 올라와도. ‘일부’의 일이라고 말하던 그들은 여초 사이트에 대해선 태도를 달리 했다. 집단에서도 여성은 ‘개인’이 아닌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다. 

 우리는 이쯤 물어야 한다. 2000년대 우리 사회에 눈부신 발전을 가져다준 디지털 문명은 여성에게도 친절했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는 사회와 문화에 의해 폭력을 폭력이라고 느낄 자유마저 삭제당한 채,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통해 응당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으며 ‘여성’으로서의 자아 그 자체가 억압되고 통제당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에게 가한 피해가 아닌 언론과 검경이 보여준 여성 전체의 대한 폭력, 그 극단이었다. 디지털이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서 재이용된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은 한국의 마녀사냥이라 보아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근대 초의 ‘마녀 사냥꾼’과 그들은 닮아있다. 그들에게 마녀사냥이란 일종의 유흥이자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공포의 확산이었다. 디지털 성폭력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유흥이자 공포의 확산이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지금, 침묵 속에서 분노를 참아왔던 그녀들의 목소리가 2015년 일종의 ‘과격한’ 형태로 세상에 튀어나오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과격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한다. 소라넷에는 하루 평균 2개의 강간 인증 글이 올라왔다. 2001년도 만들어진 ‘훔쳐보기 게시판’은 2010년부터 하루에 수십 개의 ‘불법 촬영’ 사진이 올라왔다. 업로드된 한국 영상은 모두 ‘불법 촬영’으로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5년 소라넷을 ‘야동’ 사이트가 아닌 ‘성폭력’ 사이트라 칭했다. 

두려움에 떨며 살 바에는 마녀가 될 것이다. 불태워지는 마녀가 아닌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마녀가 될 것이다. 2015년 ‘소라넷 폐지’ 운동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혀를 찼다. 소라넷이 사라져도 어차피 디지털 성폭력은 존재할 거라고,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고. 

소라넷이 사라진 지금 혀를 차던 그들의 말처럼 디지털 성폭력이 더욱 증가했는지, 혹은 줄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단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이제 ‘디지털 성폭력’을 야동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

2018년 여세에 기고했던 글.

https://brunch.co.kr/@catnaro16/13

‘N번방’ 그리고 일그러진 영웅.

고등학생 시절 야한 동영상을 두 글자로 줄여 만든 “야동”이라는 단어는 범죄 폭력과 같은 꺼림칙한 느낌보다는 동네슈퍼 마냥 친근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2006년도 MBC에서 방영된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평소에 독재자에 권위적인 가장으로 등장하던 ‘이순재’는 컴퓨터 폴더를 뒤적거리다가 의도하지 않게 낯부끄러운 영상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혀를 내차던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해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자신의 체면도 잊은 채 후다닥 책상 아래로 들어가 코드를 뽑는다.     

 그렇게 당황하여 허둥지둥하는 권위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야동순재’ 에피소드는 큰 화제가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드라마가 성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 ‘이순재’는 아직도 그 ‘야동 순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을 정도니. ‘야동’ 에피소드가 얼마나 전 국민에게 큰 공감을 주었던 걸까?     

 사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이라 한다면 2003년부터~2006년까지 수많은 AV를 불법 복제하여 돈을 벌었던 ‘kimcc’가 구속된 해. 그는 토토 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만개가 넘는 AV 영상을 무단 개시하였고, 몇 년의 수사 끝에 2006년 10월 음란물 유포죄로 구속이 되었다. 그 소식은 언론에 대대로 보도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더는 그의 자료를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김본좌”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그도 모자랐는지 김본자의 법정 진술이라며 ‘본좌 복음’이라는 망언록(?)을 만들고. 팬카페까지 만들어 그의 악행(?)을 기려 주기 까지 한다.

본좌복음 연행편 32절 9장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그시절 유행어였던 ‘지못미’가 그 사건으로 하여금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걸 아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 대한 대우는 범죄자에 대한 대우가 아닌 ‘영웅’의 대우였다.  그도 모자랐는지 그 이후로 웹하드에서 음란물 유포죄로 끌려간 모든 이들에게 ‘정본좌’‘양 본좌’‘서본좌’‘박 본좌’등의 별명을 지어준다.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본좌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에 있던 일들이다. 반 아이들은 우스개 소리로 “지못미”라는 말을 외치며 동급생 아이들에게 “본좌”라는 별명을 지어주곤 했다. 아무런 어색함 없이 유출된 연예인의 영상을 본적이 있냐며 묻고 ,보는 방법을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몇아이들은 불쾌하다는 듯이 ‘그런’ 농담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불만을 토로해봤자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니까.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자라온 걸까?

나의 세대의 남자 아이들에게는 마음속 한켠 그 본좌들이 배트맨 슈퍼맨과 같은 영웅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어쩌면 N번방에 참여했던 가해자들에게는- 그 시절 본좌들이 그들의 영웅이지 않았을까?인터넷에 출처 없이 떠도는 본좌 복음 만화.

N번방을 만든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도 사회부적응자도 아니다, 그저 여성이라는 존재가 재화일뿐인- 일그러진 세상의 영웅이다. 

97년생 하예나가 자라온 일그러진 세상에는 일그러진 영웅이 있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아동청소년, 그리고 디지털 성폭력

2017년 7월 5일 KWDI 젠더폭력 방지 국제 콘퍼런스에 기고했던 토론문.  오타 비문 전체 수정.

1. 서론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 이후,  2006년 버디버디 몸캠 등의 아동 청소년의 디지털 성폭력이 가시화되며 정부는『아동ㆍ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수차례 재개정하였다. 최근 2015 개정된 『아동ㆍ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 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의 소지만으로도 처벌되도로록 개정되었으며. 아동을 흉내낸 성적 영상물 또한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로 정의하여 처벌 범위를 넓혔다. 그 이후 국내 서버를 이용한 웹하드 P2P 사이트의 경우 ‘아동ㆍ청소년 음란물 유포’라고 칭해지는 아동 대상 유포 성폭력이 발견되는 극히 드물어졌다.  하지만 국내법의 규제의 밖에 있는 해외 사이트의 경우 아직 아동 청소년 영상의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아동 청소년 디지털 성폭력 영상물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동 청소년 영상물’이라 한다면 가해자가 참여하여 직접 강간 영상 추행 영상 등을 찍는 것 을 생각하기 쉬운데. 온라인 공간 속에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여 ‘성적인’ 몸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것을 ‘직접 올리도록’ 제안하는 자들이 존재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아동, 청소년에게 금전을 제시하거나 그러한 ‘성적’ 행위가 ‘칭찬받을 만한’ 행위라 학습시키는 자들이 있다. 이는  아동, 청소년 스스로 ‘성적표현물’을 제작하여 업로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아동의 문제가 아닌 이를 유도한 그루밍의 가해자로부터 촉발된 문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 혹은 대중 매체에서는 이를 ‘아이’의 문제로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아동, 청소년’에게 책임을 무는 행위는 되러 가해자의 죄책감을 덜고 아동의 피해를 확산시킴에 일조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해외 사이트들은 ‘아동, 청소년, 성인’을 가리지 않고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따라 정체성과 가치관이 확립되는 시기의 아동과 청소년이 디지털 성폭력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으며 이는 아동 청소년의 성적 가치관 형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우려된다. 이는 피해자 뿐만 아니라 아동 청소년 기의 가해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우리는 새로이 생산되는 ‘아동,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를 막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워진 아동 대상 디지털 성폭력의 변화를 인지하고 이에 맞춘 법안을 새로 개정해야 한다.

2. 디지털 그루밍(digital grooming)

‘그루밍’이란 가해자가 아동ㆍ청소년과 친해지기 위하여 접근하는 모든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길들이기’ 과정에서 가해자는 아동의 욕구를 충족시켜 아동과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동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상황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은 온라인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데. 게임 내 채팅, 핸드폰 랜덤채팅 어플 등 접근 가능한 매체의 종류는 수없이 다양하다. DSO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그루밍 행위를 참여 성폭력의 일종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를 ‘디지털 그루밍’이라고 칭한다.

 2015년 10월, 랜덤채팅을 이용한 그루밍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5명의 실험자를 통해 각 13살~19살의 미성년자 여아의 프로필을 꾸며 ‘앙톡’, ‘즐톡’ 등의 채팅 어플에 동시에 투입하였다. 두 차례의 실험 결과, 1시간 동안 성인 남성으로부터 최소 10개 이상의 메시지를 받았으며 그중 성적 요구가 포함된 메시지는 3개 이상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모든 실험자의 지역이 달랐고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지역별 가까운 사람에게 프로필이 드러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실험 결과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힌다.)

 또한 피해자의 연령별로 접근하는 방식이 변화했는데. 실험자의 가상 나이가 어릴수록 ‘금전’을 통한 유혹보다는 친분을 쌓거나 ‘흥미로운 것을 알려준다’는 등의 ‘호기심’ 유도를 통해 접근했다. 이들은 대화가 길어지면 ‘만나자’는 요구를 하거나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며 실험자에게 ‘너도 사진을 보내야 한다’는 방식으로 ‘아동’을 연기하고 있는 실험자의 사진을 요구했다.  *이외 단순하게 친근한 접근은 표기하지 않는다.

 트위터 혹은 텀블러 등의 해외 기반 SNS에서는 집단적인 그루밍 현상도 확인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의 성적인 사진이 올라오면 리트윗(게시글을 재업로드하는 행위), ‘좋아요’, ‘라이크’ 등의 표시를 누르거나 댓글을 통해 해당 사진을 ‘찬양’하거나 더 강한 수위의 성적 게시물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아동, 청소년은 더 큰 관심과 칭찬을 받기 위하여 보다 높은 수위의 글을 게시하거나 일종의 이벤트를 통해 성인 남성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가치관과 정체성이 확립되는 아동 ㆍ청소년기의 인정 욕구를 이용한 가해자들의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며 집단적이다. 이러한 디지털 그루밍 행위에 대하여 2010년 일명 ‘그루밍 법’이라 불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어 이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性)을 사기 위해 인터넷, 채팅 등에서 이들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매매’ 유인에만 한정되며 이외의 성적인 접근은 포함하지 않아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하기 모호한 부분에서는 한계를 가진다.

3.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비추어지는 아동 청소년들

또한 본인의 영상을 게시한 아동 및 청소년들이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아동ㆍ청소년 보호법’을 위반한 단속 대상으로 전락하여 보호가 아닌 ‘범죄자로서의’검거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2014년도 기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이 최근 1년 동안 아동 음란물을 유포하거나 소지한 사람을 적발했는데요. 놀랍게도 초등학생이 1/3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적발된 초등학생들은 SNS상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본인의 음란사진까지 찍어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략) 특히 이번에 적발된 초등학생 33명은 모두 자신의 신체 사진을 촬영해 유포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현호 YTN 기자 [아동음란물 유포 30%가 초등학생] )

 이에 따르면 1년간 아동음란물을 유포하여 검거된 이들 가운데 30%가 초등학생이며 초등학생을 제외한 미성년자의 비율은 80%가량이 된다. 대게 사진을 찍어 올린 당사자가 검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영상과 사진들은 사진을 요구했던 그루밍 가해 집단들에게 수집되어 판매용으로 계속해서 재 유포되고 있다.

 해당 게시물을 이용하는 가해자들은 아동, 청소년이 스스로 촬영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거나, ‘아동 청소년’이 ‘음란’하다는 댓글을 남긴다.

 ‘그루밍’ 가해자의 존재가 숨겨지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 더불어 빠르게 유포되고 있는 영상들은 실제 ‘아동, 청소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들어내며 나아가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학대행위로 이어지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4. 플랫폼을 통한 잘못된 성인지 확산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발전에 따라 아동, 청소년은 빠른 시기에 디지털 성폭력을 을 접하게 된다. (허남설 경향신문 기자[SNS 퍼져있는 아동음란물… 초등학교 2학년도 봤다])이들이 쉽게 접하게 되는 성적 콘텐츠는 성인 인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실제 강간, 아동, 유포’ (여성에 대한 폭력) 영상이 올라오는 해외 사이트과 SNS 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동, 청소년은 왜곡된 성관념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으며 이를 행위를 모방하는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해외 사이트는 크게 ‘직접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와 불가능한 사이트로 나뉘고 있으며 직접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는 ‘레벨’ 제도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게시물의 추천, 댓글 수에 따라 레벨이 오르며 레벨이 올랐을 때 보다 다양한 ‘특권’이 주어지는 형태이다. 이는 게임 시스템과 흡사하며 이용자의 인정 욕구 충족에 만족을 주는 구조이다. 

DSO에서 모니터링을 진행한 사이트 가운데 하나에서는 아동, 청소년의 도촬(도둑촬영) 사진이 활발하게 게시되고 있는데 촬영자의 장소나 위치 등을 보았을 때 이는 대개 아동, 청소년이 학우를 찍은 도촬 사진으로 예상되는 것이 다수였다.

또한 트위터, 텀블러 등을 통한 ‘지인 얼싸, 능욕’의 경우 피해자가 ‘아동, 청소년’인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가해자가 ‘지인’ 임을 감안했을 때 이도 동년배의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아동,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있어 검거되는 대개 아동 청소년 중 불법 촬영의 가해자도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5. 영국의 그루밍 법안

영국의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는 아동에게 성적인 의도로 접근했을 때 처벌이 가능한 ‘그루밍’ 법안이 존재하며 이는 지역마다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중 스코틀랜드가 가장 강력한 그루밍 법안을 가지고 있다.

잉글랜드북아일랜드웨일스에서는 2003년 재정된 성범죄법을 통해 그루밍 행위가 제재되고 있다하지만 이때 공식적인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는 성인이 의도적으로아동을 만났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온라인 가해자들이 실제로 아동을 만나려고 의도하지 않는 경우 또한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웹캠을 통해 아동에게 성적 행위를 하도록 설득하는 일이 그와 같다.

(잉글랜드) 1988년 악의적 커뮤니케이션법에 따르면, 괴로움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범죄가 된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그루밍하는 이들이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경우 결국 고통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은 힘들다.가해자들은 아동의 온라인 프로필을 참고하여 그들의 흥미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관계를 쌓기 위해 목표한 아동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 127항 127항에 따르면 극도로 모욕적이거나 노골적인, 음란한, 위협적인 요소를 포함한 온라인 메시지(electronic message)를 보내는 것은 범죄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그루밍을 자행하는 이들을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동과 신뢰를 쌓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웨일스,잉글랜드2014년 12월에 개최된 ‘#WePROTECT 아동 온라인 서밋’에서 정부는 온라인 아동 성폭력을 멈추기 위한 일련의 방침을 발표했다. 해당 방침에는성인이 16세 미만 아동에게 성적인 메시지를 전송하면 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입법이 포함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2009년 스코틀랜드 성범죄법에 따라 성인이 고의적으로 아동과 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경우 범죄가 된다. 한편 스코틀랜드에서는 관련 사건을 기소할 수 있지만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는 불가능하다.          

참고 자료     

DSO 아동청소년 대상 모니터링 자료(2015~2016)

나현호 YTN 기자[아동음란물 유포 30%가 초등학생]

http://www.ytn.co.kr/_ln/0103_201410302109496244

이지혜 DSO [디지털 성범죄 법안 자료집_영국]

이현혜 한국 양성평등 진흥원 교수[아동 성폭력 예방그루밍을 깨야합니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01380

허남설 경향신문 기자[SNS 퍼져있는 아동음란물… 초등학교 2학년도 봤다]

소라넷 폐지 운동 제 경험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브런치 발행글 

글을 쓰고자 하는 결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나는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을 반복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어떤 이야기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말이다. 나는 나의  경험을 정리하며 힘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여성들에게, 큰 야망을 꿈꾸라! 앞으로 전진하라! 그리 말하는 글 말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생각만으로도 벅찬 감정이 차올라 책상에 앉았지만 나의 손에서 그런 글이 써 내려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써지지 않는 글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한강 변을 달리고 있었다.

 일자로 쭉 펼쳐진 도로에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추월했다. 이유 모를 성취감에 계속 앞사람을 추월하다가, 결국 경주용 자전거를 탄 사람들에게 추월당했다.

 그렇게 추월을 당하자 오기가 생겼다.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기어를 올려 발을 굴렀지만 난 결국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저 멀리 자전거를 탄 사람이 사라지고, 이유 모를 패배감에 휩싸여 있던 나는 문득 내가 하는 행동이 너무 우스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순히 다른 목적지와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이유로 혼자 추월하고 경쟁하고, 패배하고 우울해하고. 낙담하고.  이 세상 어딘가 나와 같은 우스운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추월하는 것도, 나를 추월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달리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달린 덕에 한 시간이나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할 일을 잃고 떠돌다가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혼자 사색에 빠졌다. 그 상황 속에서, 사회 속의 나와 우리들이 떠오른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가 어디에, 언제, 무엇을 위해 가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앞으로 나가며 추월당하고 추월함에 만족과 패배감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또,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한 번 더 깨닫는다. 전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지 마침내 도착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른 채 그대로 경쟁을 위한 경쟁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회 속에서, 삶 속에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찌하여 그리 열심히도 가고 있는 걸까?


 분명 처음에 이 일을, 단체 일을 시작한 시점에 나에게는 분명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 같다.

10명의 사람에게 디지털 성폭력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5명의 사람이 안다고 말하는 한국

나는 그런 한국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고 어쩌면 나는 목적을 이루었고, 목적지를 지나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전진을 위한 전진만을 반복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어쩌면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소라넷’이 성인 사이트로서 당당히 군림하고 있던 그때. 소라넷 폐지 운동을 하는 것은, 디지털 성폭력 운동을 하는 것은 새로운 길을 뚫는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2015년부터 디지털 성폭력을 전개해왔던 단체의 역사가 써 내려 가져야 한다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나는 단체가 해왔던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데이터로 남겨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잡한 데이터로 펼쳐져 있는 데이터들을 문장과 서사는 나의 내면에서 문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만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단체와 함께 지내온 이야기를 하길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성공, 행복, 기쁨도 있었지만 넘어지고 다치고 아픈 순간에 들이 존재했다. 아니,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쏟아져 내리는 시선과 사건 속에서 아픔 속에서 버텨왔고. 실패하기도 했고 결국 서로의 탓을 하며 미워하기도 했고 질투하기도 했고 고집을 부리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지만 어쩌면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그 기억들을 두려워했고 복기하는 것을, 써 내려가는 것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 다치고 아픈 시간을 돌아보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또 다른 목적지를 정하고 전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도착지에 도착한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지나온 길에 넘어지고 쓸려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울부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시밭길을 지나며 박힌 가시는 뽑히지 않은 채 나를 갉아먹는다. 나는 주저앉아 지나온 길을 인지하지도, 앞으로 길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절망하고 만다.

 나는 엉망이 되어 주저앉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을 원망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엉망으로 상처 받은 나만을 보고 자신을 질책하고 울분에 찬 고함을 지른다.

  그러다 문득 깨닫고 만다. 달리지 않은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다. 나의 넘어짐이 비웃음이 되더라도, 나는 뛰었다.

 그래, 나는 뛰었다. 뛰지 못한 상황에는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갔다. 온몸이 쓸려 엉망진창이 될지라도. 맨손으로 가시덩굴을 헤쳐 손바닥 가득 가시가 박혔을지라도. 먼지투성이가 되어 그것이 비웃기는 꼴이 되었을지라도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제야 주위가 보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넘어져서 아파하고 있는 사람도 앞서 악착같이 달려 나가는 사람들도 두려움에 뒤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서로를 밀치고 다치고 넘어지는 모습도.

  자각하고 보니 어느새 같은 길목에서 지나치는 참 많이 늘었다.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우리는 같은 지금 방향을 걷고 있다. 내가 그려왔던, 꿈꿔왔던 좋은 일이지만 이곳은 비좁고 험하기에, 한 발 뒤에 낭떠러지가, 위험한 장애물이 있기에 부딪힘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연거푸 부딪히고 서로를 상처 입히고 만다.

 나는 언제쯤 나를 밀치고 지나간 그들을 동행자로서 다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몇 명의 사람들을 밀쳐냈을까? 어쩌면 내가 눈살을 찌푸렸던 그들처럼 그저 자신의 억울함에 악을 세우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까?

 나의 흉터와 상처들을 바라보고 인제야 원망과 부끄러움이 아닌 슬픔을 느낀다. 슬픔을 느끼고 나서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서야 혼자가 아니었음을,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나와 발을 맞춰 함께하는 뛰고, 걷고 있던 이들이 있었음을 느끼고 만다.

 그들과 함께 아팠던 것을, 또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어리석게도 그제야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언제부터, 나는 “함께”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대한 감사를 잊고 말았을까?

 처음에는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언젠가 오로지 앞서 달려야 하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일인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달리기만 시작했다.

 무작정 달리는 나에게 박자를 맞추어 주지 못한다고 질책하고, 잠시 쉬는 나를 미워할까 두려워하고. 함께 걷던 그들의 박자도, 그들의 걸음도 이해하지 못하다 결국 엉망이 되어 주저앉은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원망한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런 못난 나일지라도, 나의 배려 없었던 걸음에도 지친 기색을 감추며 괜찮다 고생했다 말하며, 자신들의 짐 위에 내가 안고 있던 짐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와 단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두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세상에서 조금은 다른 방향이지만 그들의 길을, 그들만의 새로운 길을 전진해왔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부딪혔다.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 속에서, 학교 속에서, 가정 속에서 당신은 부딪혔기에 다쳤고 생존했기에 아프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세계를 바꾸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던가.

 주저앉아 울부짖던 나처럼. 그들도 상처를 추스르지 못한 채 그저 절망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자전거 여행과 같이 모두의 종착지가 다른 이 세상 속에서, 어쩌면 성공이란 제일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목표를 이루었음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길을 헤매는 것처럼 무언가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 속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두 가지로 사람을 구분하기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실패와 상처에 대하여, 헤맴에 이야기하는 것을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공포로 느끼고 만다.

 우리는 어느새 목적을 까맣게 잊고 앞서 간 사람들을 추월하기 위해 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옆을 지나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공포스럽다. 넘어진 순간순간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끝없이 달려야 했던 우리에게 야망이 없었을까? 아니, 당신과 나 ‘우리’는 어쩌면 누구보다 야망을 꿈꿨고 치열하게 달렸다. 그렇기에 아팠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 있다.

 그제야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전진의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돌아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이 아픔이 실패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쩌면 당신은, 우리는 목적지를 이미 지나쳤거나 그 누구보다 목적지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목적지를 모르고 헤맴을 겪었을지라도. 반대로 가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목적지를 찾기 위한 헤맴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 우리는 괜찮다고.

우리는 실수로 실패로 배우는 인간이니까.

 잠시 멈춰서 돌아보고 다시 목적지를 정하자. 도착한 그곳이 내가 찾던 그곳이 아닐지라도, 다시 떠나면 된다.

나는 한참을 길 중앙에 주저앉아 있다가 인제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앞서 지나간 누군가의 발자취를 발견한다.

 나는 그 발자취를 보며 순례자의 심정으로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 길을 지나갈 누군가를 위해 이정표를 남긴다.

어쩌면 나의 글들은, 나의 질문들은 내가 평생 안고 갈 나에 대한 성찰이자, 반성의 전진의 대한 다짐이다. 주저앉아있던 나를 다독여주고 힘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전하며.  

  나 또한 성공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간 여성이자 반성폭력 운동가이자 성폭력 생존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야망을, 성공을 꿈을 찾고자 하는 여성들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써 나간다. 

‘이정표’  그래,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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